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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과 11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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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선희 작성일23-01-29 12:02 조회5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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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11년과 11초
본문 : 삼하 15 : 24-31
설교자 : 이원일 목사
설교일 : 23. 01. 29.
  

예배영상링크입니다

1부 https://youtu.be/ENDZyP9HVD0

 

 

 

노래 사랑 참 어렵다에서 가수 이승철은 사랑이 정말 있기는 한 거니사랑 참 어렵다. 어렵다. 많이 아프다. 내 모든 걸 다 주어도 부족한 사랑 참 어렵다라고 노래했다. 사랑이란 단어는 듣기만 해도 좋을 텐데 실상은 자신의 것을 다 주어도 부족하다고 느끼게 되니 힘들다고 노래한다. 용서도 마찬가지다. 용서가 실제로 가능한 것이기는 한 것일까? 용서는 영성이 특별한 일부 사람에게나 가능한 것은 아닐까? 이렇듯 용서라는 단어는 어딘지 모르게 숭고해 보이기는 하지만 실천에 옮기기는 참 어렵다.

 

어떤 사람은 가해자를 용서하고 싶은데 마음속의 분노가 좀체 가시지 않아 힘들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은 용서를 하고 싶어도 어떻게 해야 되는 것인지를 모르겠다면서 힘들어 하기도 한다. 또 어떤 사람은 세월이 많이 흘러 마음속에 상처만 남아 있고 용서의 대상이 모호해져서 무엇을, 그리고 누구를 용서해야 될지 몰라 힘들어하기도 한다. 때로는 용서에 대한 기준이 없어 좌충우돌하며 어찌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곤 한다. 가해자의 사과 없이 무조건 용서해 주는 것이 옳은 것인지, 가해자의 사과를 전제로 하는 조건적인 용서가 모든 측면에서 옳은 것인지 그 가운데서 헛갈리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일상을 살면서 용서를 힘들어할 때, 이러한 것들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몇 가지 다른 초보적인 이유들도 존재한다. 세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용서에 대한 모호한 정의 때문이고, 둘째는 용서의 기준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셋째는 용서의 적용 범위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용서가 어려운 이유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용서의 기준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용서의 기준이 없거나 모호하다는 것이다. 기준 없이 어떤 때는 무조건적으로 용서해 주기도 하고 어떤 때는 조건적으로 용서해 주는 것이다. 그러나 용서의 주체가 기준이 없다 보니 분위기에 휩쓸리거나 너무 쉽다.

 

용서의 기준이나 원칙이 없는 것도 용서를 힘들게 하지만, 용서의 대상에 대한 모호함도 용서를 힘들게 한다. “우리의 용서 대상은 누구인가?” 혹은 우리의 용서 대상은 누구인가?” 나는 무엇누구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부당함이나 죄가 용서의 대상(무엇)이고, 가해자나 죄인이 용서의 대상(누구)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여러 가지 이유로 우리는 용서를 행하고자 할 때 어려움을 겪는다. 그 어려움에는 여러 이유들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용서의 정의가 모호하면 모호할수록 용서 행위는 어려워진다. 용서의 기준이 모호할 경우도 올바른 용서 행위가 어려워진다. 더 나아가 용서의 대상이 명료하지 않을 경우에도 용서 행위는 힘들어진다. ‘용서라는 단어를 적용할 필요가 없는 상황을 대상으로 막연하나마 용서를 시도하느라 마음의 에너지만 소진할 뿐이다. 다음 시간에는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용서가 무엇인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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