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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의 분노와 하나님의 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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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찬미 작성일21-06-27 11:10 조회175회 댓글0건

본문

제목 : 요나의 분노와 하나님의 자비
본문 : 욘 4: 1-11
설교자 : 장지현 목사
설교일 : 21. 06. 27.
  

예배 영상 링크입니다

https://youtu.be/2RLOPnfp24c

 

 

 

본문은 하나님께 불평의 기도를 하는 요나와 그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과 행하신 일입니다. 기도보다는 불평같습니다. 요나가 분노하는 원인은 무엇이며 하나님의 자비는 어떠합니까?

 

첫 번째, 대적에게 내리는 하나님의 자비에 분노하는 요나

2절에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주께서는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요나는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악독이 하나님 앞에 상달된 니느웨를 멸망시키지 않을 줄로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스로 도망쳤다는 것입니다. 그럴듯한 이유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다시스로 도망갈 이유는 없습니다.

 

그들을 향하여 외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런데 니느웨는 앗수르의 수도입니다. 앗수르는 북이스라엘을 침공하고 정복해서 인구혼혈정책까지 펼쳤습니다(왕하15:29,17:24). 그러므로 니느웨는 이스라엘의 원수입니다. 그런 원수의 악독이 하나님께 상달되었다면 재앙을 받아 마땅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벌 대신 자비를 내리심으로 요나는 분노한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입니다(73:1-13). 요나는 하나님께서 선인과 악인의 밭에 동시에 비를 내리시는 자비한 분이심과 그 자비의 대상이 곧 니느웨 사람임을 몰랐던 것입니다.

 

두 번째, 습관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말을 하는 요나

3절에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요나는 멸망 당할 원수가 멸망 대신 하나님의 자비로 거듭 번성하는 것을 볼 때에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겪은 것 같습니다. 그것을 눈 뜨고는 못 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괴롭고 힘들면 그렇게 말하겠습니까? 물론 정의를 세우려는 요나의 마음도 좋습니다. 애국하는 마음도 좋습니다. 공평하고 공의로운 하나님께서 하신 불공평한 듯한 하나님의 처사에 분노하고 불평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나의 그 말은 정의와 애국보다는 습관적입니다. 죽는 것이 좋겠다고 대적하는 요나에게 하나님께서 박넝쿨로 그늘을 만들어 주셨다가 거두자 요나가 또 다시 분노합니다. 8절에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행동처럼 말도 습관대로 합니다. 말로 죽겠다고 하면 행동으로 죽고 살겠다고 하면 삽니다. 왜요? 모든 사람이 구원받고 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귀에 들린대로 시행하시기 때문입니다(14:28,딤전2:4).

 

세 번째, 자신을 대적하는 요나에게 자비를 베푸시는 하나님

8절에 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쪼이매 요나가 혼미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이르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을 향하여 죽여 달라는 말입니다. 자식이 부모에게 결코 해서는 안 될 패역의 말 중에 하나가 내가 죽겠다. 나를 죽이라고 대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고 지금까지 은혜와 사랑으로 양육하신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런 하나님 아버지를 향하여 오늘 요나는 패역의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그를 벌하시지 않으시고 설득을 시킵니다. 10절과 11절에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대마불사가 아닙니다. 악독이 당신 앞에 상달된 니느웨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들이라고 보았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자비의 원천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자신을 못 박는 자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한 것은 그들이 하는 일을 그들이 알지 못하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용서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면 하나님의 자비가 임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로 자비를 받은 자로서 형제를 긍휼히 여겨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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