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함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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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호성 작성일19-04-28 12:01 조회25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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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랑함에 대하여 <2019/4/28(주낮)>
본문: 요일4:16
사랑이라는 것은 현상이 아닌 본질을 먼저 찾을 때 모든 것이 해결되어 집니다. 그런데, 보이는 현상에서만 해결책을 찾게 되면 결국 구멍 난 독에 물 붓는 것입니다. “사랑”은 우리가 사는 지금 이 순간을 에덴동산과 같이 천국으로 만들어줍니다. 대상이 변하지 않아도, 환경이 변하지 않아도, 또 허다한 죄가 팽배할지라도, 사랑은 그 모든 것들을 다 흡수하여 사랑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입니다. 그럼 우리의 사랑은 어떻습니까?
인간의 네 가지 사랑
1090-1153년까지 살았던 “프랑스에 끌레르보 버나드”라는 수도사는 교회사에 위대한 지도자 중 한 사람으로 역사상 가장 경건한 사람 중 하나로 칭송을 받은 인물입니다. 그가 사랑의 단계를 네 가지로 설명했습니다. 간략하게 말씀드리면, 첫 번째는 “자자사랑”입니다. “자기를 위해서 자기를 사랑한다.” 즉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사는 사람입니다. 이 자자사랑이 도를 넘게 되면, “욕망과 쾌락”으로 끝이 납니다.
두 번째는 “자하사랑”입니다. “자신을 위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자자사랑”에서 자기가 잘난 줄알고 살다가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고난을 겪게 되면 그때서야 “하나님”을 찾는 사랑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자기를 위해서 찾는 사랑”입니다. 시련을 넘어서면 다시 “자자사랑”으로 가기도 합니다.
세 번째는 “하하사랑”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무딘 사람도 “자하사랑”이 반복되면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합니다. 그러므로 “나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됩니다. 이때야 비로서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이 삶으로 드러나고, “사랑”을 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는 “하자사랑”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자기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단계를 체험하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한 마음이 되고 우리의 뜻과 하나님의 뜻이 하나가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라는 기도 즉 “하나님의 기도가 나의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를 사랑하게 되는 것이지만 결국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단계가 “하자사랑”이라는 것입니다. “복종을 넘어서서 순종의 삶”이 됩니다.
과연 오늘 우리는 어떠한 사랑에 머물러 있는지? 자자인지 자하인지 하하인지 아니면 하자인지.. 여전히 우리는 조건적입니다. “복”주시면, “자식”잘되면, “문제”해결되면, “부자”되면, “가정이 기업이 월급”이 잘되면 우리는 조건적으로 움직이는 그래서 “십자가의 도를 미련한 것”으로 몰아가는 무지하고 파렴치한 자들일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라 하십니다.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신5:10입니다. “사랑하고”가 중요하지 “계명”은 “사랑”이 먼저 가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는 것입니다. 그저, “죄를 찾아내고, 정죄하고 심판”할 뿐입니다.
신6:5에서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하지 않았습니다. 바쳐라. 하지 않았습니다. 지켜라.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 “사랑하라. 사랑하라. 그냥 사랑하라.”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벧전4:8에서 “무엇보다도 열심히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입니다. “사랑”은 “남”이 없습니다. 모두가 다 내 형제요, 자매일 뿐입니다.
사랑하는 대광의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나눔) 내가 사랑으로 살고 있다는 증거는 무엇입니까? 그러기 위해서 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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