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산나! 나의 왕이시여!”
페이지 정보
작성자 호성 작성일18-03-25 12:14 조회304회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호산나! 나의 왕이시여! <요12:12-15> 18/3/25 (주낮,종려주일)
고난주간이 시작되는 종려주일입니다. 세상의 예의범절에는 격식과 품위가 있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향한 나귀타신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모습입니다.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첫 번째, 예루살렘으로 오시는 예수님
12절에 “그 이튿날에는 명절에 온 큰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것을 듣고”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신 것은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하나는 명절인 유월절에 모든 백성들이 성전에 올라가야 하는 규례를 예수님도 지킨 것입니다(신16:16). 예수님은 초월적 존재로서 탈법이 아닌 모범을 보이셨습니다(요5:19,30).
그리고 또 하나는 자신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서울인 예루살렘은 살기위해 그리고 성공을 꿈꾸는 사람들이 찿는 곳이었습니다(요7:1-4). 그러나 예수님이 예루살렘을 올라가신 것은 살기 위함도 아니고 성공을 위함도 아니었습니다. 죽기위해 가셨습니다. 가야할 길이면 성공과 실패, 삶과 죽음도 뛰어 넘습니다(빌1:20-21).
두 번째, 나귀를 타고 오시는 예수님
14절에 “예수는 한 어린 나귀를 보고 타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린 나귀새끼를 타신 것도 이유와 목적이 있습니다. 나귀새끼를 타신 이유는 예수님이 겸손하시기 때문입니다. 슥9:9에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겸손하십니다(마11:28). 그러므로 우리도 겸손해야 합니다(벧전5:5).
그리고 예수님께서 나귀새끼를 타신 목적은 성경을 응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요13:18에 예수님은 자신을 팔자가 누군지를 말씀하시면서, 그것은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에도 성경을 응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요19:28-30). 그러므로 성도의 삶도 성경을 응하게 하는 삶이어야 합니다(요14:23-24). 어떤 고난이 있어도.
세 번째, 두려워해야 할 왕이신 예수님
15절에 “이는 기록된바 시온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 함과 같더라”라고 하였습니다. 왕은 생사여탈권을 가진 거의 절대적 존재였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백성들은 두려워했습니다(삼상16:4).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왕 앞에 고개를 들 수 없었습니다. 롬13:1-4에도 죄지은 자는 권세자 앞에서 두려워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진정으로 두려워해야할 왕은 누굽니까? 우리나라의 왕이나 중국과 로마의 황제가 아닙니다.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입니다. 왕은 공경하되 하나님은 두려워해야 합니다(시76:11-12,눅12:5,벧전2:17). 온 세상 사람들과 왕들도 하나님을 두려워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친근합니까? 그분은 우리가 두려워 할 분입니다(시34:9-11). 그분의 말씀을
네 번째, 찬송을 받으실 주되신 예수님
13절에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대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고 하였습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오시는 예수님을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라고 외쳤습니다. 예수님이 주, 그리스도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시기에 ‘호산나! 찬송하리로다!’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말은 구원자가 되신다는 말씀입니다(마1:21). 그래서 그를 부르는 자마다 구원을 받았고, 또한 받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자들입니다. 구원받은 자들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 구원의 은혜를 누리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우리의 찬송의 이유입니다(시34:1-6.고후1:3,엡1:3-6). 그러므로 이 종려주일에 주님처럼 말씀에 순종하고 겸손 합시다. 그리고 그분을 경외하며 동시에 찬송합시다.
나눔) 주님께서 가신 길을 가다가 받은 은혜들을 이야기해 봅시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