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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떤 무지개를 띄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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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기쁨 작성일15-03-29 16:17 조회58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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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ter  | 2008·03·07 15:02 | HIT : 257 | VOTE : 16
 
 

- 김앤윤 -
1. 영원한 사랑이 그립습니다.

영재라고 일컬어지는 남녀 학생 둘이, 모든 친구들이 알게 드러내 놓고 서로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남학생은 세칭 일류 대학에 합격하고 여학생은 낙방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남학생이 여학생에게 결별을 선언했다는 소문이 들렸습니다. 저는 그 남학생을 불러 물어보았습니다.

“그렇게 남다른 사이였는데 어찌 박절하게 관계를 끊으려 하니?”

그때 남학생 대답이 이랬습니다.

“그애 가망이 없잖아요? 대학도 못 들어가고…. 이번에 그애 능력을 알게 됐거든요. 그런 애 하고는 사귀고 싶지 않습니다.”

그 여학생이 얼마나 힘들어했는가는 더 이상 기억하고 싶지 않습니다.
서로 좋아 만났는데 상대방이 나보다 경제적 여유나 학벌, 사회적 위치가 못해졌다고 해서 헤어지자고 말한 적은 없었는지요?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가장 소중한 것이 사랑입니다. 능력이 아닙니다. 오히려 모자라는 것을 서로 채워줄 수 있는 게 진정한 사랑의 힘 아닐까요. 상대가 힘들어 할 때 버팀목이 돼 줄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일 것입니다.

그립습니다, 영원한 사랑이.

2. 책 읽는 사람이 아쉽습니다.

모 대학교 교양과목 강의 시간에 겪었던 일입니다.
한 학생이 제가 여러 해 전 발간한 창작집을 보고 싶은데 절판되어 구할 수 없다고 하기에 마침 제게 여분이 있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막 강의를 시작하려고 교탁 앞에 섰을 때 학생들 몇이 제 책을 가진 학생에게 하는 말이 들렸습니다.

“어, 웬 책이야? 책은 뭐 하려고 샀어?”

 “그래. 책 살 돈 있으면 친구들한테 술이나 사든지 영화관이나 가지.”

제게서 책을 받은 학생이 황당한 눈빛으로 얼른 이쪽을 훔쳐보다가 그쪽을 바라보던 제 눈과 마주치고 말았습니다.
그날 제 강의는 엉망이 돼버렸습니다. 머릿속에는 책과 술과 영화가 뒤섞여 돌아갔습니다. 책을 읽으려 했던 그 학생의 민망해하던 선량한 얼굴이 아직도 선합니다.
오늘날은 정신적 지주(支柱)가 없는 시대란 말을 많이 듣습니다. 책이야말로 나의 삶을 지탱해 주는 최고의 기둥입니다.

아쉽습니다, 책 읽는 사람이.

3. 빛 바랜 가족 사진이 웃었습니다.

시골에 있는 지인(知人)의 고옥을 찾았을 때입니다.

축담에서 툇마루로 오르는데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게 창호지 바른 방문 위에 걸려 있는 오래된 사진이었습니다. 서른 명 가까이 되는 대가족이 낡은 사진틀 안에서 해바라기처럼 활짝 웃고 있었습니다. 주인이 들려주었습니다.

“이제 세상을 뜨신 어른도 계시고 외국에 나가 있는 식구도 있고 저기 아랫마을에 사는 피붙이도 있지요. 하지만 모두 저 사진 한 장 속에서 영원히 함께 살고 있답니다.”

기억이 흐릿하지만, 저명한 외국 학자가 말했던 것 같습니다. 인류가 영원히 살아 남을 길은 한국의 대가족 제도뿐이라고.
지금은 모두 한데 모여 살기는 어렵더라도 당장 내 살붙이들 불러모아 사진 한 장 찍었으면 좋겠습니다.

웃었습니다, 빛 바랜 가족 사진이.

4. 실패의 훈장이 자랑스럽습니다.

이십대 초반에 저는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오월 중순 경이었는데 산에 들어가서 비석도 상석도 없는 무덤가에 혼자 누워 있으니 눈물만 연신 주루룩 흘러내렸습니다. 상상도 못한 실패의 연속이었지요.
그때 어디선가 ‘뻐꾹 뻐꾹’ 뻐꾸기 우는 소리가 났습니다. 그런데 그 소리가 제 귀에는 이렇게 들렸습니다.

―바보! 벅수!
다음 순간 무슨 인기척이 있어 벌떡 일어났는데 눈앞에 머리칼이 허옇게 센 노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노인네 눈치답게 한 젊은이가 참기 어려운 실의에 젖어 그곳에 와 있다는 것을 알아챈 듯했습니다.
노인은 자신의 실패담과 어떻게 그것을 극복했는가를 들려주었습니다. 그저 평범해 보이는 촌부(村夫)에게 그런 엄청난 과거가 있으리라곤 짐작도 못했던 일입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누구나 죽음까지 생각하는 실패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습니다. 감사의 큰절을 올리고 산골짝을 내려오는데 또 뻐꾸기 소리가 났습니다.

―뛰어! 죽어? 살아!

실패는 수치가 아닙니다. 좌절과 낙담의 시작도 아닙니다. 실패-그것은 성공의 보증수표입니다. 자랑스럽게 목에 걸어 보십시오. 지나온 세월 동안 내가 겪었던 그 모든 실패의 훈장들을.

자랑스럽습니다, 실패의 훈장이.

우리 다같이 아쉬움을 떨치고, 그리움에 젖은 눈빛으로, 자랑스런 웃음을, 무지개같이 띄웠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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