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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잘못되어갈때 (옮긴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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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기쁨 작성일15-03-29 18:07 조회61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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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uslove  | 2009·04·06 09:36 | HIT : 370 | VOTE : 8
 
 

 상황이 잘못되어갈 때 하나님은 어디 계시는가?

“하나님은 날 사랑하시지 않는 게 분명해.
그분이 날 사랑하신다면 이런 끔찍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야.”
당신이 이렇게 말했거나 생각한 적이 있다면 큰 오해를 떨쳐버려야 한다.
하나님이 그분의 창조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신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이다.

물론 당신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셨고 세상의 그 무엇도 그분 없이 된 게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요 1:3).
그러나 당신이 명심해야 할 몇 가지 진리가 있다.

◈하나님이 작동해놓으신 법칙의 지배
 이 세상의 일상적인 운행 중에서 많은 부분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간섭을 받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작동해놓으신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
예를 들면, 움직이는 물체에 일어나는 일은 물리학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

그리스도인들이 움직이는 물체와 충돌한다고 해서 움직이는 물체가 갑자기 멈추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인이 빙판길에서 시속 130킬로미터로 운전한다면, 그 자동차는 비그리스도인이 같은 상황에서 운전할 때와 똑같이 작동할 것이다.
자동차가 중심을 잃고 다른 차와 충돌할 때,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물리학 법칙이 작용하지 않게 해주실 거라고 기대할 수 없다.

그리스도인의 자동차도 비그리스도인의 자동차와 똑같이 파손될 것이며, 무고한 상대편 자동차의 운전자도 비그리스도인의 차에 받힐 때와 똑같이 다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가 취하는 행동의 물리적인 결과를 막으려고 개입하시는 일은 거의 없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나쁜 일이 일어나도록 개입하지도 않으신다.
하나님은 고속도로에서 한쪽 자동차를 들어 다른 자동차와 충돌하게 하지 않으신다.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이것은 개개인이 취한 독립된 행동의 결과이며, 서로의 행동이 두 물체가 동시에 동일한 장소를 점할 수 없다는 물리학 법칙을 어겼기 때문이다.
두 물체가 동시에 동일한 장소를 점하려 할 때, 충돌이 일어나며 참사로 발생할 때가 많다.

자신이 하나님의 원리를 무시했든 아니면 다른 사람이 무시했기 때문에 무고한 희생자가 되었든 간에, 그리스도인에게 재난이 닥치는 것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으신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도록 창조되었는지 보여준다.
일단 이 사실을 이해하면, 재난이 닥칠 때 대개는 하나님께 화를 낼 가능성이 줄어든다.

◈재난의 유익
 지금은 재난처럼 보이는 것이 결국에는 우리에게 유익이 될 수 있다.
하나님은 ‘부모와 자녀’라는 관계 속에서 자신을 우리에게 계시하셨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생각한다면 그분의 방법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아버지로서, 하나님은 우리에게는 없는 정보를 갖고 계신다.
다시 말해, 그분은 더 큰 그림을 보신다.
그분이 우리에게 시련을 허락하신다면 그분이 상황을 더 넓은 각도에서 보고 계시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일은 우리가 우리의 자녀를 대할 때 자주 일어난다.

어린 아이가 “예쁘고 멋지고 번쩍이고 길쭉한 저 고기칼을 갖고 싶어요”라고 말할 때 부모가 “안 돼! 저건 네가 갖고 놀 수 있는 게 아냐”라고 말한다면, 부모는 아이를 부당하게 대하고 있는 게 아니라 아이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수 있다면, 왜 우리의 많은 바람과 요구가 이루어지지 않는지 이해할 것이다.

내 생각에는 이 주제와 관련해서 가장 깊고 가장 잘 전개된 이야기 가운데 하나는 쉘던 베너컨의 「잔인한 자비」(A Severe Mercy, 복있는사람 역간)에 나오는 이야기일 것이다.
저자의 아내가 죽었고, C.S.루이스가 한 가지 설명을 한다.

루이스는 그들의 사랑이 너무나 자기중심적이었고, 두 사람이 서로에게 너무나 매여 있어서, 하나님이 그녀를 두 사람이 자신들만의 이기심 때문에 주변 세상에 거의 쓸모가 없게 되어버린 세상에 남겨두는 대신에, 그분과 함께 있도록 즉시 하늘나라로 데려가셨을 수 있으며 이것은 정말 잔인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수 있다면 이것은 결국 그렇게 잔인해 보이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그림 전체를 볼 수 있다면 우리의 많은 어려움이, 특히 우리 자신이 학대받고 있다고 느낄 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멀리 서서 본다면,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다루신 이유가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흥미롭게도, 나는 사람들이 정상의 경험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말하는 것을 거의 듣지 못했다.

거의 언제나, 사람들은 어떤 골짜기나 당시에는 정말 마음 조리게 했던 큰 어려움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한다.
이들은 이러한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동안에는 자신들이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중에 뒤를 돌아볼 때는 하나님이 그분의 영광을 위해 그 어려움을 어떻게 사용하셨으며 그 어려움 때문에 자신들을 어떻게 더 나은 사람으로 빚으셨는지 알게 된다.
세계적인 위대한 문학과 철학 가운데 많은 것이 이러한 깨달음에서 나왔다.

◈ 부모가 자녀를 바라보듯이
 하나님은 한 발 물러나 자연이 자기 길을 가도록 허락하심으로써 우리에게 귀중한 교훈을 주고 계실 것이다.
이러한 진리는 하나님이 우리와 갖기를 원하시는 부모와 자녀 관계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우리가 어떤 일에 대해서는 관여하지 않고 그 일이 우리의 자녀들에게 일어나도록 허용하듯이, 하나님도 우리에게 그렇게 하신다.
부모가 자녀의 주변에 안전그물을 지나치게 많이 치면 자녀는 스스로 역할을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예를 들면, 부모가 펑크 난 곳을 계속해서 메워주면 자녀는 경제적으로 무책임해질 것이다.
부모는 자녀가 혼자서 살 수 있는 능력을 기르도록 돕기 위해 때로 자녀가 자신의 경제적인 문제들과 씨름하고 스스로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아야 한다.

자녀는 이러한 경험을 하는 동안 부모가 공정하지 못하거나 독단적이거나 심지어 잔인하다고 느낄 수 있다.
자녀는 그저 간단하게 부모가 개입해서 펑크 난 곳을 메워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사실 부모로서는 뒤로 물러나 자녀가 자기 행동의 자연스러운 결과를 경험하도록 놓아두는 게 더 지혜롭다.
부모가 보이는 이러한 절제는 결국 자녀에게 유익하다.
부모가 뒤로 물러서는 것은 자녀를 괴롭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녀의 성장을 돕기 위해서이다.

자연의 법칙은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에게 똑같이 작용한다.
우리의 시각은 제한되어 있다.
자연스러운 결과가 우리의 성장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세 가지 진리를 이해한다면 하나님의 사랑과 일상의 고통스러운 경험을 연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하나님은 부모로서 자신을 우리에게 계시하셨다.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을 좋지 않은 부모로 만드는 모든 개념을 거부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땅 위의 어떤 부모보다 무한히 더 좋은 분이다.

너무나 더 좋으시기 때문에 이 땅에서 알려진 최고의 부모와 자녀 관계도 우리가 하나님과 가질 수 있는 관계에 비하면 ‘새 발의 피’라고 표현할 수조차 없다.
나로서는 내가 이런저런 시련을 겪는 이유를 항상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께서 결국에는 내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신다고 믿는다.

+ 제이 케슬러 Jay Kes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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