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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의 사랑을 받는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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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호성 작성일19-09-29 12:09 조회33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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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의 사랑을 받는 사람은? 요삼1:13-15 <19/9/29,주낮>

 

해가 떠오르면 모든 생물들에게 변화와 움직임이 일어나듯, 사람이 사랑을 하면 안팎으로 나타나는 현상들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가지는 마음과 자세도 변화됩니다.

 

첫 번째, 말을 하고 싶은 사람입니다.

13절에 내가 네게 쓸 것이 많으나 먹과 붓으로 쓰기를 원하지 아니하고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네게 쓸 것이 많으나라고 하는 이와 같은 표현은 사람들이 편지를 마무리할 때 쓰는 일반적이고 관례적인 서술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드릴 말씀은 태산과 같으나...’라든지? ‘하고 싶은 말은 하늘의 별처럼 수없이 많지만 이만 총총....’ 등의 표현과 같습니다. 뜻보다는 서간문의 형식에 맞춘 종결구절 양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용적으로는 사도 요한이 가이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다고 합니다. 사랑하면 사랑의 감정을 전하고 싶습니다. 전하거나 외치지 않으면 터질것 같은 것이 사랑입니다. 그래서 밤새도록 전화를 하고, 어제 만나고 또 만납니다. 하루에도 몇 차례나 편지를 씁니다. ‘나는 오늘도 너에게 편지를 쓰노니,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행복하였노라고 한 청마 유치환은 사랑하는 이에게 쓴 편지가 5천통에 이른다고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예수님을 통해 하신 사랑의 말입니다(33:29,요일4:10,1:1-2). 사랑하면 말을 하고 싶습니다.

 

두 번째, 속히 보고 싶은 사람입니다.

14절에 속히 보기를 바라노니 또한 우리가 대면하여 말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사도요한이 가이오를 속히 만나 얘기하고 싶어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디모데처럼 그는 사도 요한이 믿음으로 낳은 아들이 아닙니다. 그리고 사도요한의 동역자나 제자도 아닙니다. 물론 일가친척도 아니고, 사도요한에게 무슨 도움을 주었다는 기록도 없습니다. 가이오는 그의 사람이기보다는 사도 바울의 사람입니다(고전1:14,19:26,16:23).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이오가 사도요한에게 속히 보고 싶은 사람이 된 것 까닭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가 진리 안에서 행한 일이 사도요한에게 큰 기쁨이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3-4). 곧 나그네 된 믿음의 형제들을 잘 영접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5-8). 이렇게 진리안에서 행하는 사람은 여러 사람으로부터 인정과 칭찬을 받습니다. 진리안에서 행하며, 나그네를 영접하는 따뜻하고, 옳은 사람은 사도와 함께 많은 사람들이 속히 보고 싶어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도 보고 싶어 찿으시는 사람입니다(5:1,25:35).

 

세 번째, 복 빔과 권면을 받는 사람입니다.

15절에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여러 친구가 네게 문안하느니라. 너는 친구들의 이름을 들어 문안하라고 합니다. 평강은 걱정이나 탈이 없음입니다만 성경적인 평강은 정신적, 육체적, 물질적으로 완전한 이상적 충족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평강보다 좋은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평강은 세상이 줄 수 없는 하나님의 것이기에 그분께 비는 것입니다(14:27,15:33). 주께서는 평강을 주셨고, 평강의 사람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면 권면을 합니다. 하반절에 너는 친구들에게 이름을 들어 문안하라고 하였습니다. ‘이름을 들어 문안하라는 말은 일일이 문안하라는 뜻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일일이 문안하기가 쉽지 않고, 이름을 다 기억할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많고 분주하면 일일이 이름을 들어 문안하기가 귀찮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라고 권면합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는 시인의 고백처럼, 이름을 불러주는 것은 사랑입니다. 사랑하면 권면합니다(27:9,3:16,살전5:11).

 

나눔) 자신이 말을 하고 싶고 보고 싶고 축복하고 싶은 성도는 누군지 얘기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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